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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삶의 자세

간절히 원하라

How Bad Do You Want It?

Eric Thomas라는 연설가가 있는데 그 사람의 강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아주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주 성공한 나이든 노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당신과 같은 레벨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성공한 사람은 말하기를 당신이 나와 같은 레벨이 되고 싶다면 나와 다음 날 해변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음 날, 그 젊은이는 새벽 4시에 정장을 갖춰 입고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이 나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을 말하기를 “당신은 얼마나 성공하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젊은 사람은 “아주 정말 많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성공한 사람은 그 사람을 데리고 바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은 허리춤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젊은이는 생각했다.

‘나는 돈을 벌기를 원했는데 이 사람은 나를 왜 해변으로 끌고 와서 수영을 하게 만들지? 나는 인명구조원이 되려는 것이 아닌데……’

노인은 계속 들어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다가 물은 어깨까지 차올랐다. 그 젊은이는 생각했다.

‘이 노인네가 미쳤구나. 돈은 잘 벌어도 완전히 미쳤구나.’

젊은이가 깊은 물에서 주저하자 노인이 물었다.

“난 당신이 성공하기를 원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젊은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럼 좀 더 물로 들어오게.”

그래서 그 젊은이는 물이 자신의 머리까지 잠기는 곳까지 들어갔다. 그래도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더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노인은 그 젊은이의 머리를 물 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 젊은이가 익사 직전이 될 때까지 물에 밀어 넣더니 마지막에는 그 젊은이를 해변으로 끌어오면서 말했다.

“자네가 지금처럼 숨을 쉬고 싶어한 만큼 절박하게 성공을 바란다면 너는 성공할거야.”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천식으로 고생한 사람 있는가? 한번이라도 천식을 겪어 본 적이 있다면 숨이 차 오르고 숨쉬기가 힘들어서 계속 쌕쌕 거릴 것이다. 그때 한가지 바라는 것이라면 바로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그때는 농구 경기나 TV에 나오는 아무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고 파티는 이미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때 네가 오직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로 보통 네가 성공하고 싶다고 얘기할 때 정말 숨쉬는 것처럼 바라지 않는다면 너는 그저 막연히 바라는 것뿐이다. 너는 성공을 파티에 가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고 싶어하는 욕구보다 더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네가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2~3시간만 자고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네가 정말 성공을 바란다면 3일 동안 한 잠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된다면 네가 정말로 성공을 바라는 것이다.

네가 정말로 성공을 바란다면 먹는 것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비욘세가 말하기를 하루는 그녀가 공연을 준비하다가 3일이 갔는데 한번도 먹지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너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배고프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내가 한번은 50 Cent(미국의 성공한 래퍼)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 때는 사운드트랙을 만든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그럼 언제 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잠요? 파산한 사람들이나 자는 것이지 나는 안 자요”

나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되어 준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과학고에 지원해서 합격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 준 큰 사건이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내가 바라는 것들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때 일년으로 인해서 내 인생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지금의 나로 살아오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다. 해답은 보이지 않고 도움을 청할 곳은 없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고…… 해답은 보이질 않지만 무작정 걷거나 뛰어야 할 때가 있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지만 나 자신을 믿고 발걸음을 계속 떼어야 할 때가 있다.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무작정 물을 부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노력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목적지가 흐릿하게나마 보이고 밑 빠진 독에 물이 차오르는 경험을 할 때가 있었다. 그게 나의 중 3 시절이었다.

나는 국민학교(그 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때 공부를 잘했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학교 수업만 듣고 전과 몇 번만 봐도 대부분 반에서 1등 아니면 2등이라는 성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고 그냥 재미있게 놀면서 학교생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에서 명문 학군인 수성구의 명문 학교에 가고 싶었던 나는 경신 중, 대륜 중, 덕원 중의 하나에 걸리기를 기대했지만 엉뚱하게 오성 중학교라는 생각지도 않았던 학교로 가고 말았다. 이 학교에 산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올라가려면 한참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야 하고 학교 건물이 완전 하얕게 되어 있어 정신 병동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 학교에서 중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3년 동안 재미있었던 추억 거리를 만들면서 지내게 되었다.

국민학교 때 공부를 착실히 했던 탓에 반에서 배치 고사 1등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56명 정도가 한 반이었고 10반이 있었으니 전교 10등 안에는 들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학기 초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고 반 1등이라서 학습 부장으로 임명할 때까지도 나는 중학교 공부도 국민학교 때와 같이 하면 충분히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교 공부는 국민학교 공부와 너무 달랐다. 국민학교 때는 사실 공부를 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냥 학교에 가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가고 집에 가서 전과를 보면서 복습하는 것이 다였던 나는 그렇게 하면 중학교도 1등 아니면 2등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우선 대구에서 제일 좋은 학군이었던 수성구 학군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경쟁도 국민학교가 있었던 동구 학군과 비교하면 아주 치열했다. 사실 국민학교 때는 공부할 양이 많이 없어서 학원에 다니고 전과를 보면서 밤에 1~2시간만 공부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본인이 다녔던 중학교는 중간고사만 해도 15과목의 시험을 치를 만큼 많은 양을 중학생들이 공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런 양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점점 대충대충 수업을 따라가게 되고 나중에는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었다

난 중학교 때까지 잠이 참 많았다. 학교 갔다 와서 9시 정도면 꼭 잠이 들었으니 하루에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를 자면서 중2 때 까지는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런 나를 보면서 답답해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깨운 뒤 공부 좀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잠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도 상상이 안 간다.

잠도 많고, 공부는 별로 안 했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서 농구하고 축구하고 놀았으니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부에 익숙해서였는지 다행히 그렇게 많이 떨어지진 않고 반에서 5등 안에는 거의 들었던 것 같다. 2학년 때에 반에서 노는 것은 대담해져서 아이들을 주도해 가면서 놀았고 수업 시간에는 만화책, 도박 그리고 장난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과학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과학고를 지망할 때는 과학고는 실로 꿈의 학교였다. 그 시절에 과학고에 들어간다는 것은 서울대에 가는 것만큼 힘들었다. 대구에 70여개의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에 120명만 입학한다는 과학고, 그리고 과학고에 입학하고 그곳 공부를 어느 정도 따라가기만 하면 서울대 합격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사실에 너무 매료되었다.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서 1학년이 끝나면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 물리, 화학은 대부분 진도가 끝나고 대학교의 수학과 물리, 화학 과정을 심화 학습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적잖아 매력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이 학교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 인생은 크게 바뀔 것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3학년을 시작할 때 학교에서 과학고 반을 따로 만든다고 말이 나왔다. 그리고 과학고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교육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 학교에 지원하는 것도 나에게는 벅찬 상태였다. 당시 과학고 지원 자격은 2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전교 석차 전체 3% 이내 혹은 국·영·수 과학이 모두 ‘수’이면 가능했다. 첫 번째 조건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50등 정도였던 나는 꿈도 못 꿀 형편이었고, 두 번째 조건은 내가 국어를 별로 잘하지 못해서 위태로웠다. 그리고 2학년을 마칠 즈음 국어 성적이 평균 86점이 나와서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평균 86점부터 ‘수’라는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도 그게 어떻게 ‘수’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90점이 넘어야 ‘수’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그때 점수에 따른 백분율로 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때 국어를 ‘수’를 받지 못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참 궁금하다.

그렇게 3학년이 되자 과학고에 정말 들어가고 싶었다. 한 학교에서 한 명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과학 고등학교, 불가능이라는 벽이 있었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 가능성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만들어준 과학고 반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내에서도 많은 패가 갈려져 있었다. 잘하는 애들은 잘하는 애들끼리 노는 분위기였고, 나 같이 별로 가능성도 없는데 과학고 반에 들어온 애들은 그들끼리 또 시시덕거리며 노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잘하는 애들이 못하는 애들을 무시하는 것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그런 것 때문에 꼭 과학고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중학교 들어와서 마음먹고 공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수업 듣고 문제집 조금 풀어 보다가 시험 치는 식으로 대충대충 공부했던 나는 중 3이 되자 수학, 과학에 기초가 너무 부족해서 힘들었다. 특히 과학고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수학, 과학인데 학원에 다닌 것도 아니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라서 너무 불안했었다.

과학고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 우선 나는 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무조건 새벽 4시 전에는 자지 않았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처음으로 굳게 한 약속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을 했었다. 방에 찬 물을 떠 놓고 잠이 올 때마다 세수했다. 잠이 오면 꼬집고 뺨을 때리고 벽을 치면서 공부를 했었다. 고무줄도 갖다 놓고 잠이 올 때마다 자신을 학대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학교로 향했고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책과 더불어 살았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도 절대 함부로 보내지 않고 그 전 시간의 복습과 다음 시간의 예습을 했으며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봤다. 정말로 ‘공부 벌레’가 된 것이었다. 하루 2시간 수면, 22시간 공부를 정말 한 달 동안 거의 지키면서 살았다. 사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나 자신이 생각해도 놀랍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중3 때 첫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다. 첫 시험에서 전교 7등을 했다. 반에 전교 1등이 있어 반 1등을 하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큰 자신감을 얻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전 과목에서 6개를 틀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평균 97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용기를 얻어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새로 전략을 짜서 수학, 과학, 영어에 목숨을 걸기로 했다.

나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과학고 시험 수준에서는 형편없었다. 우선 중 1, 2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기초가 없었고 과학고 입시 수준의 심화 문제가 나오면 도저히 손도 못 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는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을 다시 공부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중 1 수학을 다 떼고, 중 2 수학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공부하니 어느 정도 수학에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원래 수학은 좋아했기 때문에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다.

중 3 수학 문제집은 거의 5권 정도 풀었던 것 같다. 한 몇 권 풀면 문제 경향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알게 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하나 공략해서 풀었다. 당시 ‘A급 수학’이라는 문제집이 있었는데 그 문제들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A, B, C로 레벨이 나뉘어서 문제가 나와 있었는데, 나는 우선 문제집을 사자마자 답안지를 따로 분리했고 풀기 전까지는 답안지를 절대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공부했다. 이 문제집의 A급 레벨의 문제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거의 고 1의 공통 수학 수준의 문제도 있었고 어떨 때는 수2 정석을 찾아봐서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A급 문제의 경우 나는 나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어서 풀이 과정을 다 정리했다. 주관식의 경우 문제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답안을 유도하는 과정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공부한 것은 내가 나중에 과학고에 가서도 큰 도움을 얻었다. 경시 대회를 준비할 때 답안 작성에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때의 습관으로 깔끔하게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한 문제를 가지고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골몰했던 적도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그 문제만 가지고 생각하다가 결국 풀어내고 환호성을 질렀던 적도 있었다. 나는 조금씩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 가고 있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문제를 푸는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간다는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발전되어 나가고 있다는 즐거움에 나는 빠져들고 있었다.

과학의 경우는 어떻게든 문제를 많이 풀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행했던 ‘유니크 물상’을 중심으로 나는 우선 중 3 물상을 다 끝내고 이전에 부족했던 중 2, 중 1 것을 차례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실 생물은 거의 포기 상태였다. 외우는 것도 너무 많았고, 특히 내가 생물을 잘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거기에 투자를 하는 것보다 물상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영어는 그런대로 점수는 잘 나왔지만 대부분 독해 지문을 읽고 해석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과학고 입시를 위해서는 단어를 무조건 많이 외우고, 독해를 많이 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3 때 약 2,000단어 정도가 정리되어 있던 단어장을 하나 사서 통째로 외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해 집을 사서 풀어나갔다. 특히 영어는 다시 한번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학 같은 경우라면 외우고 익숙해지는 것보다는 사고력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영어는 무엇보다도 많이 접해 보고 기억 속에서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므로 그렇게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해서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중간고사 이후로 국·영·수 과학 외의 학교 공부는 수업 시간, 그리고 시험 기간 이외에는 별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부에는 궤도와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성적에는 관성이 있어서 처음 올릴 때는 힘들지만 한번 올라간 성적은 완전 포기하고 놀지 않는 한은 다시 떨어지기도 쉽지 않다. 습관이라는 것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한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궤도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말고사는 중간고사 보다는 잘 보지 못했지만 전교 8등으로 3학년 1학기를 마무리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 학원에 다니지 않은 것이다. 중 1, 2 때는 학원에 다녔어도 수업 시간에 항상 떠들고 애들을 주동해가며 놀았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도 수학, 영어는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가끔 선생님들 골려 주려고 어려운 문제 들고 가서 물어보긴 했지만, 솔직히 그 당시에는 학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한동안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이런 나를 보고 답답해서 가기 싫다는 나를 끌고 동네의 유명한 학원을 보냈던 적이 있다. 근데 그곳에 가서도 애들하고도 별로 적응하지 못하고 또 그 반이 공부 열심히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해서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은 대신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내가 물어볼 상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골몰하다가 문제를 풀어내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사실 그렇게 수없이 고민하는 가운데 사고력이 많이 길러 졌던 것 같다. 그렇게 수학 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수학 천재들이 넘쳐 난다는 과학고에 가서도 수학에서는 인정받으면서 공부했던 것 같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국·영·수·과학 외에 모든 것은 포기했다. 사실 도박을 한 것이었다. 국·영·수 과학 외의 과목에서는 점수를 잃더라도 배점이 큰 4대 과목에서는 반드시 점수를 많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국·영·수·과학 외의 수업 시간에는 무조건 다른 과목 공부를 했다. 가끔 선생님께 걸려서 두드려 맞은 적도 있고 다른 과목 숙제는 하지 않아서 혼난 적도 많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꿋꿋이 거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101등이라는 석차를 받았다. 그전 학기에 전교 8등이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많이 떨어진 것이라서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많이 맞았던 사람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맞은 종아리는 일주일 동안 멍이 들어서 쓰라렸다.

과학고만 간다면, 내가 거기만 합격한다면 세상 어떤 시련도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것만 바라보고 중 3 시절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험이 가까울수록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초연해졌다.

‘다른 애들은 3년 동안 열심히 해서 그리고 대구에서 날고 긴다는 애들이 지원하는데 그렇게 많이 놀던 내가 중 3 겨우 1년 공부해서 어떻게 합격할 수 있을까? 그냥 시험 쳐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그리고 나는 인문계 원서도 썼다. 1지망 경신고, 2지망 덕원고, 3지망 대륜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과학고도 지원했다. 경쟁률은 5.8:1이었다.

시험 날 아침,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 주셔서 시험장에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던 것 같다. 과학 고등학교 교정을 걸으면서도 한 번 들어왔다는 것을 내 발이 기억하도록 조심스럽게 걸었던 것 같다.

시험은 어려웠다.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역대 최고로 어려웠다. 특히 수학에서 많은 친구들이 쩔쩔매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20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문제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풀어서 답안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머지 과목들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국어, 영어, 과학, 그리고 기타 과목들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때 책상에 붙어 있던 수험표를 떼고 시험을 마치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학교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실패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계기로 좀 더 노력할 수 있는 동기가 될 것이다.’

그 수험표는 1년이 넘도록 그 뒤 내 지갑 속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주일 뒤 나는 합격했다. 과학고에 다니는 아버지 친구 아들을 통해서 공고 하루 전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잘 없다. 그리고 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다. 사실 그때까지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해냈다니…….

이 때의 기억은 나를 평생 뒷받침해 주는 디딤돌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내 현실이 비관적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죽기 살기로 각오하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내 몸으로 체험해 본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경험이 되었다. 재능이 부족해도 그리고 시간이 부족해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 본 것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리스크테이커(Risk-taker)가 되라

사람은 보통 두 가지로 분류된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는 Risk-taker와 가능하면 위험을 피해가려고 Risk-averse person. 위험을 놓고 그대로 전지하는지 아니면 그 위험을 피해가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이 결정되고 그 결정은 그의 삶이 어떻게 흐르게 될 지 결정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Risk-averse의 성향을 띈다. 누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데 그 굴 속에 아무 무기도 없이 들어가겠는가? 누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망망대해의 바다 속에 뛰어 들어 고기를 잡으려고 하겠는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하게 먹고 자고 쉬고 그리고 익숙했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위험을 진다는 것은 많은 변화를 수반한다는 말이다. 그 전에 배우고 익숙해 졌던 많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해서 새로운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정신을 곤두서게 만든다.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목숨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 리스크테이커들에 인해서 크게 발전되고 변화되어 왔다. 빌게이츠가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하버드 학위를 버리고 창업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개인 컴퓨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텔의 회장인 앤디 그로브가 자신의 모국인 헝가리가 점령당하자 목숨을 걸고 국경을 탈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도체의 새 역사를 목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변화의 기로에 있을 때 한 용기 있는 선택은 우리의 인생을 더욱 나아가게 만들고 나아가 이 인류를 더욱 발전시키고 번영시키는 결과를 나았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는 많은 선택들이 위험을 지고 있지만 맹수를 사냥하는 것처럼 목숨을 내놓는 정도의 위험은 아니다. 돈을 다 잃거나 그 동안 들인 시간을 다 낭비할 수는 있지만 목숨까지 요구하는 정도의 위험은 세상에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이 결정에 따른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과학고를 지원한다고 결정을 했을 때 그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냥 과학고 입시에 떨어지거나 입시에 대한 자격 요건도 미달이 되어 시험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은 내 목숨을 요구하거나 돈을 다 잃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봤자 내가 시험에 떨어지는 불명예였다.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그리고 내 시간과 노력을 모두 올인해서 그 도박에 베팅을 걸었다. 그리고 그 베팅에서 이겼다.

미국에 오려고 할 때도 그것은 나에게 위험을 지는 것이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나이가 30에 가까워오면서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도 생각해야 되고, 2번의 유학 실패를 겪어서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만일 유학을 가서 졸업하더라도 그 어렵다는 미국 취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 도무지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나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고 무작정 갔다. 3번째 도전한 유학에서는 합격했으며 1300여개의 직종에 지원해서 미국 취업을 해서 지금 4년 넘게 미국에서 제일 큰 컴퓨터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학교 두 군데를 모두 졸업했다. 공대에서 제일 좋다는 카이스트와 경영대에서 제일 알아주는 서울대를 졸업했다면 사실 한국에서 취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했다면 어느 정도 출세 가도를 달릴 것이 예상되는 터였다. 하지만 내가 왜 미국을 오려고 했을까?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한다면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두번째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유학 가서 취업하겠다는 결정의 위험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냥 유학 실패를 하고 한국의 회사에 다니거나 미국 유학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회사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목숨을 요구하거나 사회적 불명예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돈도 많이 낭비하고 금쪽 같은 나의 젊은 시절도 낭비하겠지만 내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선택이 아니었다. 위험도는 낮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위험을 분석해 보기도 전에 피해버리고 만다. 기껏해야 돈을 잃어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는 기회에 베팅을 하기보다는 자기는 안 될거야 하고 치부해버리고 도전하기를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자기와 다르게 그 도전을 해서 성공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표현하곤 한다.

난 리스크테이커이다. 지금도 안이한 삶을 계획하기 보다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좀 더 역동적이고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삶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것은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작은 선택들이 나중에 위험을 진 큰 선택들로 이어졌고 이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근면 성실하라

공부는 나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그래도 공정한 기회 중의 하나가 공부가 아닐까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미국으로 올 수 있었고 지금 미국의 대기업에서의 일자리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 경쟁에서 살아남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자신이 근면 성실하게 공부해왔던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그렇게 머리가 특출 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고, 카이스트, 서울대를 거치면서 워낙 뛰어난 친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학교에 있으면 정말 넘사벽의 천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번은 과학고 1학년 때 친구들의 중학교 졸업 성적이 교무실에 걸려 있어 다른 애들과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거의 절반 이상이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온 것을 보면서 탄식을 자아낸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날고 기던 애들이 지금 우리 반에 와서 다시 경쟁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정말 많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일이었다. 정말 8시에 학교에 와서 5시에 학교 내에 있는 독서실로 이동할 때까지 쉬는 시간 10분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쉬는 시간을 5분으로 나눠서 5분은 그 전 수업 복습, 나머지 5분은 다음 수업 예습을 했다. 물론 화장실을 가야 할 때는 빨리 갔다 와서 나머지 시간을 쪼개가면 예습과 복습을 쉬는 시간에 했다. 이게 10분이 짧은 것 같지만 쉬는 시간에 미리 예습을 하고 듣는 것과 안 듣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미리 고민을 해보고 핵심적인 부분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도 이해가 빨랐고 나중에 공부 시간도 훨씬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밤 12시에 기숙사에 와서는 짐만 정리해 놓고 휴게실로 가서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다가 다시 방에 돌아왔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노력했기 때문에 과학고 초기에는 바닥이었던 성적이 점점 올라서 나중에는 꽤 상위권에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물리 경시 대회를 준비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 경시 대회를 준비하고 입상까지 했던 과학고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경시대회를 입상한 적도 그리고 준비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물리 경시 대회에 더욱 집착을 가지게 되었다. 과학고의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고등학교 물리를 모두 배우고 들어온다. 나는 고등학교 과목을 선행하지도 못했고 물리는 중학교 때 배운 물상이 전부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들어 준 물리 경시 반에 들어가서 대학교 물리 교재를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고 조금씩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는 할리데이 일반물리학 교재를 가지고 배웠는데 1권과 2권으로 나눠진 두꺼운 대학 물리학 책이었다. 이 책을 가지고 물리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강의를 해 주셨는데 사실 그 진도를 따라가는 것도 너무 버거웠다. 그렇게 거의 자포자기 수준으로 진도는 진행되었는데 사실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겨울 방학이었다. 누구는 집에 가고 누구는 학교 운동장에서 놀면서 방학을 보내는 사이 나는 학교의 독서실에 나와서 물리책을 하나씩 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일반 물리학을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부족한 수학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 미적분학 책도 하나 사서 같이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방학을 온전히 일반 물리학 책과 같이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학기도 꼭 해야 되는 숙제나 임박한 공부가 아니라면 온전히 물리학에만 집중하고 물리학 책만 파면서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선택과 집중의 결과는 나의 근면 성실과 결부되어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겨울 방학을 보내고 그 다음 해 실시한 물리 경시 대회에서 나는 과학고 교내 은상을 받고, 이어 시도 대회에서는 물리 경시대회 금상을 받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웃긴 것은 시도 대회에서 4위까지 입상을 해서 전국 대회에 나가는데 이 중에 중학교 때 물리 경시 때 입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는 초반에 망친 학점 때문에 4학년 5학년을 그 망친 학점을 메꾸느라 정말 힘들게 보냈다. 하루 하루 사는 것도 너무 지치고 밥도 못 먹고 카이스트 도서관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2-3시에 기숙사에 들어오면 정말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너무 힘들어서 가끔 옥상에서 밑을 바라보면서 그냥 뛰어내려서 빨리 이 지겨운 생활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다. 그렇게 2년을 살다 보니 동아리도 그만두고 친구들도 끊어지고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2년 후 내가 원하는 목표는 달성했다. 학점을 다 메꾸었고 우등상을 받고 졸업하게 되었다. 그렇게 올린 학점이 나는 유학을 갈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2010년에 유학 올 때 학점과 관련해서 별로 문제가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머리 탓도 있지만 나는 본인만의 공부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시간을 잘 활용해 근면 성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들보다 이해가 느리고 시간이 더 많이 걸렸던 내가 공부해서 경쟁을 해 나가는 방법이었으며 내 삶의 원칙이 되었던 방법이었다.

동기 부여를 해주는 책을 많이 읽으라

대학 시절 나는 책을 무척이나 많이 읽었다. 매년마다 이사를 해야 되고 여름학기나 겨울 학기 때 기숙사를 옮겨야 했던 카이스트 시절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 너무 많아서 이사하고 나면 언제나 며칠씩은 앓아 눕곤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 책을 읽을 시간도 별로 없었고 그것보다는 수학과 과학이 너무 재미있었고 쏟아야 할 시간이 많아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와서 또 3학년 때부터는 벤처 기업에 다니면서 조금 풍족해지기 시작했다. 남는 돈을 가지고 뭐할까 하다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사고 책을 사보기 시작했다.

본인이 주로 읽고 사보기를 즐겨 하던 책은 한 사람의 인생 얘기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 어떤 분야에 성공을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이나 인생의 다른 면을 알려주는 자전 에세이 등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여정을 겪었으며 문제에 당면해서는 어떤 선택을 한 결과가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볼 수 있었다. 책을 많이 사보기도 했지만 주말에는 아침부터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카이스트의 중앙 도서관은 주말에 아주 한적한데 소파도 있어서 거기서 책을 보고 피곤하면 잠도 자다가 와도 될 만큼 아늑했다. 그곳에서 7~8권을 책을 가져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고 온 적도 꽤 있었다.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을 사랑했고 지식과 간접 경험에 목말라 있었다. 내가 유학에 대해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시절 읽은 홍정욱의 ‘7막 7장’이지만 유학이라는 꿈에 더 다가가게 해 준 것은 그 당시에 읽은 수많은 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유학을 성공해서 명문대에 진학 한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책들이 홍수처럼 나오곤 있었다. 유학 열풍이 불 시절이어서 너도 나도 열심히 해서 그런 사람들처럼 아이비리그의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사실 당시 카이스트는 유학 열풍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이 원하는 길이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삼성이나 LG등의 큰 대기업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처럼 해외 유학을 가서 미국 현지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찾기는 손에 꼽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게 가능하다고 본 것은 책에서 본 사람들의 얘기들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갖은 고생 끝에 미국에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인생 여정에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목도한 나로서는 위험이 있더라도 좀 더 높은 이상, 높은 목표를 가지고 노력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가는 곳, 그리고 내가 속한 그룹에서 다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분명 퇴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도전하겠다고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내 자신에게 맹세하곤 했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우선 동기 부여를 주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나도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죽도록 노력하면 그 사람들이 이룬 성공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내 꿈에 현실성을 더해주었다. 내 주변에서 유학을 가서 미국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읽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곤 한다. 내 자신이 책을 많이 읽고 지금의 여정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 증거이고 그렇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내 삶을 좀 더 풍족하게 만든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자신에게 동기 부여를 줄 수 있는 책을 많이 읽기 바란다. 우리의 의지는 한없이 약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시들어가고 초심을 잃기 마련이다. 새 학기에 공부 계획을 세웠지만 한 주도 되지 않아 계획을 그르치고 실망만 계속하다가 그 학기도 망해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동기 부여를 주고 목표를 바로 잡고 근면 성실을 기반으로 한 노력을 한다면 성공이라는 것이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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