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바라보면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정사각형으로 나눠진 블록에 촘촘하게 채워진 장난감처럼 보이던 도시는 조금씩 그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는 2006년 6월, 서울대 경영학과에 편입을 하고 한 학기를 마친 후였다. 그 전에 다니던 카이스트에서는 지독하게 방황하고 그것을 만회하느라 교환학생이나 어학 연수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는데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서는 이전에 못 해본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다.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다음 학기 외국 교환 학생의 기회를 알아보고 그 해 여름에는 미국에서 여름 학기를 들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미국 유학을 꿈꿔왔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나는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 가게 될 것이라고 내 삶을 미리 규정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도 나는 나중에 어떻게든 미국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내 자신이 내가 미리 계획한 삶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조금씩 울타리를 쳐놓기 시작했다.

왜 미국이었을까? 막연하게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국 유학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거쳐온 나라. 중학생 때 몇 번이고 읽었던 홍정욱의 “7막 7장”의 이야기는 미국에 대해 더 큰 동경을 가지게 해 주었다. 조그만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소년이 갖은 고생 끝에 하버드에 들어가고 최우등 졸업을 하기까지의 여정은 미국 사회에 동경을 가지고 있던 한 소년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만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어 원서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저자가 미국 유수의 대학의 교수님들이였고 카이스트에서의 교수님들의 이력을 봐도 대부분이 미국에 대학원을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에 오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내가 배우는 학문의 선진국이었고 그 곳에 가기만 해도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장소였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던 그 미국을 나는 이전까지 한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조기 유학을 가지고 못했고, 해외 여행의 기회도 없었거니와, 군대와 병역 특례 등 여러 상황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병역 특례로 중소기업에서의 복무를 끝냈지만 3년 동안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어 나는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었다. 여러 길을 알아보다가 새로 찾은 기회가 편입을 통해서 서울대 경영대에서 새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2006년 봄학기에 첫 학기를 시작했고, 그 해 여름 학기는 미국에서듣고 가을 학기에는 독일EBS(European Business School)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생각에 마음이 들 떠 있었다.

처음에 여름 학기를 가려고 알아보던 학교는 Harvard, Stanford,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이하 UC 버클리), UCLA, University of Chicago, Yale, Duke, Cornell, Columbia 등이었다. 사실 여름 학기는 미국의 학교들이 미국 문화 체험과 그 학교 생활 경험을 전제로 외국인들이 지불하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단기간이나마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서 수업을 듣고 (임시 학생증도 준다) 그 학교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도 주고 미국 대학교 생활을 체험할 기회도 주지만 그 기간에 비해 비용이 무척이나 비싸다. 또한, 여름 학기에는 해당 학교의 미국 학생들도 여름 학기를 수강하기는 하지만 특히나 캘리포니아의 경우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수업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많은 미국 대학생들이 여름에는 인턴십이나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지 수업을 듣는 경우는 많이 없다). 그래서 미국 학교의 여름 학기를 듣는 것은 쉽지만 (따로 입학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경우도 사립대는 여름 학기의 학비가 너무 비싸서 가능하면 주립대를 보고 있었는데 UCLA와 UC 버클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버클리로 결정을 내렸다.

UC 버클리는 자연과학과 공학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경영대도 미국 내에서 Top 5안에 드는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과가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양성 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연고전-고연전 식으로 경쟁하듯 캘리포니아에서는 스탠포드와 버클리가 경쟁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런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수속을 전문으로 해주는 회사가 있어 이 회사를 통해서 대부분의 수속을 하고 수업료를 납부했다. 서울대에서는 8학점까지 여름학기가 끝나고 관련 서류를 가져오면 학점으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버클리에서 8학점을 듣기로 하고 260만원 정도를 납부했다. 그리고 학생 비자인 F1 비자를 미대사관으로부터 받아서 출국했다.

경영대 편입 동기가 4명이 있었는데 그 중 3명이 같이 버클리에 가서 여름 학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생소했었는데 다행히 편입 동기였던 지은이가 같이 가서 큰 힘이 되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갈아탄 다음에 샌프란시스코로 약 10시간 정도를 비행한 다음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도착하는데 비행기에서 본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은 그야말로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정말 잘 정돈된 도시, 그리고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가진 도시였다(물론 샌프란시스코 내부에 들어가면 지저분하고 더러운 부분도 상당하다). 버클리 캠퍼스까지 오는데 돈을 아끼려고 Bart라는 철도를 타고 왔는데 중간에 대만인 친구 한 명을 만나서 같이 얘기하면서 왔고 (그 친구도 버클리에서 여름학기는 수강 할 예정이었다) 그 날은 바로 기숙사 입사가 안 되어서 근처의 YMCA Youth Hostel에 묵게 되었다.

그 날 저녁은 버클리 캠퍼스 근처의 Bongo Burger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먹게 되었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캠퍼스를 돌아보면서 무엇보다 인상에 남았던 것은 학교 안에 수많은 커다란 나무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주 우거진 산림이 있는 가운데 학교 건물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고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편안하게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말 이렇게 예쁜 캠퍼스는 처음이었다(나중에 다른 캠퍼스들을 보게 되면서 순위는 달라졌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음 날에는 기숙사에 입사했다. 기숙사는 6주에 약 140만원 정도를 내는 제일 싼 옵션이 3명이 쓰는 방을 쓰게 되었는데 방에 들어가니 대만인 룸메이트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 때 만난 친구가 바로 야오밍(영어 이름으로는 Frank)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친해지기 힘들어서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나중에 친해지니 정말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같이 많이 다녔던 친구가 되었다(야오밍은 지금 대만에서 무역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온 친구는 Ryan이라는 대만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대만 청진에서 MBA과정 중이었다. 야오밍은 방에 자주 있어서 얘기도 많이 했지만 라이언은 여자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관계로 주말에 거의 없고 밤 늦게 들어와서 학기 중에는 자주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원래 신청했던 수업은 Investment(투자론), Special Topics in Marketing(마케팅 특강), Business Communication(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원래 버클리에서의 수업은 선수과목 조건이 있어서 이 과목들을 듣기 전에 필요로 하는 과목들을 들어야지 이 수업을 신청할 수 있다. 경영대에서 수업을 한 학기밖에 듣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 선수과목이 없는 수업을 들으려고 위의 3 과목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듣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고 선수과목 조건에 관해서는 교수님 양해를 구해서 결국 듣게 된 것은 International Trade(국제 무역)과 Business Communication 이렇게 두 과목만 듣게 되었다. 사실 많은 수업 중에서 또 듣고 싶은 수업이 있었는데 바로 Legal Aspect of Business (비즈니스 법) 수업이었다. 변호사인 교수님이 비즈니스와 관련된 많은 법률 케이스들을 들고 와서 토론하고 미국 회사법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첫 수업을 들어가고 나서 도저히 따라갈 엄두가 나질 않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교수님이 첫날부터 정말 빠르게 강의 계획표를 설명해 주는데 수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2번 이상 발표를 하고 토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수업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데 발표는 어떻게 준비하며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내가 토론을 이끌어 나가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수업에 미련이 남아서 전공책을 사서 수업을 청강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수업 중간 중간에 지명해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어(Cold Call이라고 부른다) 한참을 떨다가 이 수업도 그만두게 되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수업은 북미 등지에서 일을 할 때 회사에서 대화 방법, 옷차림, 관습 등의 비즈니스 예절에 대해서 배우고 문서 작성과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 진행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다. 수업이 그렇게 큰 부담은 없었지만 아직 영어에 익숙치 않아서 가끔 놓치는 부분이 좀 있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모두가 이름표를 준비해야 되고 자리 앞에 이름표를 놓고 수업을 한다. 이 이름표를 보고 교수님이 가끔 학생에게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직 언어의 한계가 많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수업에서 그룹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 한 명의 버클리 학생과 두 명의 대만 친구들이 같은 조로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두 가지 발표를 해야 되는데 첫 번째는 정보를 설명하는 Informative Speech, 그리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Persuasive Speech를 준비해서 전체 학생 앞에서 발표를 해야 되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수업을 듣는 30명 앞에서 스피치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떨렸다. 2박 3일 동안 연습했다. 달달 외우려고 했지만 외우는 것은 역시 자신이 없어서인지 어느 정도 노트를 보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나 입에 익지 않아서인지 발음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다. 첫 번째 스피치를 했는데 나중에 교수님께서 내가 한 Capitalism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조금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두 번째 스피치는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공부했던 우리나라의 DMB 기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교수님께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국제 무역 수업은 Wood 교수님으로부터 배웠다. 회사를 경영하고 계시면서도 틈틈이 버클리로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 수업 소개를 하는 시간에 2번의 시험과 4번의 숙제로 학점이 나간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수업은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하셨다. 시험 잘 볼 수 있고 숙제 잘 낼 자신이 있으면 안 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 이런 스타일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의 스타일이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와서 열심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수업 분위기도 좋아지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장통 같은 분위기도 형성되지 않는다.

버클리에서 6주 동안을 공부하는 동안 정말 공부하려면 미국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굳혀졌다.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 그리고 나이에 따른 불편함이 없는 사회, 그리고 실력이 있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놓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해서 좀 더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미국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모순점도 많지만 교육 면에서는 정말 어떤 돈을 들이더라고 배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